염상섭의 작품과 문학사적 의의 [염상섭론]
- 최초 등록일
- 2008.08.27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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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염상섭
목차
Ⅰ. 염 상 섭
Ⅱ. 서 론
Ⅲ. 본 론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 대」
본문내용
염 상 섭
Ⅰ. 염 상 섭
1897년 서울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에서 재학 중 191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8년 경도 부립 제 2중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오사카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하였으나 피검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옥중에서 《어째서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글을 써 아사히 신문사로 보냈다. 그 해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20년 동아일보의 창간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남궁벽, 김억, 오상순 등과 함께 『폐허』동인을 결성하였다. 1921년 『개벽』지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였고, 1922년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종합지 『동명』에서기자로 활약했다. 그 해 「묘지」를 『신생활』7월~ 9월 호에 연재하였다.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던 조선일보에 1931년 「삼대」를 연재했고, 같은 해 직장을 그만뒀다. 해방 이후로도 많은 작품을 통해 문학적 활동을 이어나갔고 1963년 성북동 자택에서 67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Ⅱ. 서 론
염상섭은 한국 최초로 자연주의 문학관을 작품에 구현한 작가였고, 사실주의 문학을 한국 문학에 건설한 작가이다. 식민지 시대를 거친 염상섭의 문학이 가지는 새로운 성격을 살펴보고, 대표작을 통해 그의 문학관을 엿봄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식민지시대 우리 문학의 지향은 민족의 현실과 삶에 대한 자각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1920년대 초기의 문학적 경향은 자아의 발견 문제로부터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으로그 주제가 확대된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지식인의 고뇌가 다루어지기도 하고, 비참한 노동자 농민들의 삶이 주요한 문학적 대상이 되었다.
염상섭은 당시 김동인의 개화기 소설, 이광수의 계몽주의적 성격의 작품의 성격과 달리 염상섭만의 문예로 현실인식과 자아의 발견을 작품에 구현하여 문학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확립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