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는 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디에서 올까? 새벽에 문 앞에 배송된 물건은 어떤 이들의 손을 거쳐 왔을까? 아무도 챙기지 않는 이들, 하지만 이들의 노동에 모두가 기대어 살고 있는 사회.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이 밥과 노동,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인간이란 실체를 정의하자면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의 총체이다. 음식은 오로지 물리적 맛과 영양, 칼로리의 총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의 모든 음식에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의 변천까지 망라되어 있고,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 포도가 보통의 과일이 아니라 어느 한 여인과 그 가족들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그 무엇이었던 것처럼. 하여 오늘 우리의 입으로 쓸려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음식들이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의 음식 이야기는 마음 뭉클하고 따뜻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맛집’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조리 노동의 고단함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유통업계의 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배달 노동의 현실을 비판하고, 한편으로는 청년 라이더들에게 헬멧을 꼭 쓰라 간곡히 부탁하기도 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기대어 먹고살면서도 끝내 그들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모순을 직시하자고 말한다. 학교급식이 멈춰 끼니를 놓치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도 담겨 있다. 밥을 벌다 목숨까지 잃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더 맛있게 먹겠다 호들갑을 떠는 ‘먹방 사회’의 면구스러움을 숨기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먹고 있는지, 한 번은 물어보자는 부탁을 한다.
“먹거리 생산지로서의 농촌만 귀한 것이 아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귀하다. 농촌이 사라진다면 농민들뿐만 아니라 시골 버스 운전기사와 작은 점방을 지키는 주인 내외, 어린이와 노인, 농업 이주노동자들, 행정 관료들 모두 어디로 가야 할까. 결국 또 도시로 향해야만 한다. 도시의 숨막히는 고통은 농촌의 고통에서 출발하였고, 그렇다면 이제 농촌을 돌보고 아픈 도시를 다독일 때가 아닐는지. 힘없고 사라지는 것들에 예를 다하는 세상이라면 살아 있는 것들에 정성을 쏟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세상이 좀 더 순해질 것이라, 여전히 순진하게 믿는다.”
이제 사라질 거라 여겨져 면전에서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농민들을 만나고 연구하는 길에 들어선 것은 그가 ‘도마도 집’ 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농사짓는 이들을 관찰하는 농촌사회학 연구자가 된 저자는 농촌의 작은 목욕탕이 귀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고, 농약을 제일 많이 먼저 뒤집어쓰는 농민들이 우비와 마스크라도 잘 쓰고 일하는지 누구 하나쯤은 살펴봐야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소비자의 이름으로 생산자들에게 싸고, 안전하고, 맛있게 만들어 내라며 불가능에의 도전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살처분 현장에서 가장 고통 받는 농촌 주민과, 현관 앞 새벽 배송을 위해 밤을 새워 달려온 이의 안부를 묻자고 말한다. “우리가 먹는 밥을 위해 무게를 더 많이 지는 이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먹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하나씩 짚어 보고, 농업 문제와 외식 자영업자의 애환과 학교급식 노동의 이면에 대해 취재를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사회학자의 리포트이지만, 인문학적인 성찰과 문학의 향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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