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현대문학」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등단한 염승숙이 <채플린, 채플린> 이후 3년 만에 두번째 단편집을 발표했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현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 승자와 패자, 지루하고 고단한 이분법 세계 속의 진실을 캐묻는다. 개인 파산나 청년 실업 같은 현실 세태 속 어디 한 곳 귀의할 곳 없는 사람들, 노웨어맨(nowhere man 혹은 now here man)을 통해 말이다.
모두가 가짜인데, 진짜를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인 2011년 오늘, 염승숙은 우리에게 '비루하지도, 해말끔하지도 않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생경한 누군가'(레인스틱)들을, '딱 보기에도 있는 듯 없는 듯 회사에 붙박인, 존재감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들을, '어느 외로운 이의 서러운 울음과 웃음이 뒤엉켜 스러지는 소리'(레인스틱)들을 소개한다.
수의 제유와 환상 기제 등을 통해 '비범한 평범함을 추구'하려 했다는 평론가 우찬제의 언급처럼, 염승숙의 소설은 궁극적으로 이런저런 좌절과 실패, 상실과 전락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값이 소진되었다고, 존재의 의미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무화된 정체성, 고갈된 정체성' 등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론에 관한 문제의식과 동시대의 계량적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작가의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