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운동, 그리고 여운형
- 최초 등록일
- 2010.07.20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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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운동, 여운형에 대한 조사
목차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운동
여운형
<참고자료>
본문내용
신간회 해소 이후 국내에서 민족협동전선운동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론이 위세를 떨치던 1930년대의 휴지기를 거쳐 일제가 극단적인 군국파쇼통치를 강행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0년대의 암흑시기에 다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42. 43년부터 중도좌파는 민족통일전설을 형성하여 폭넓게 건국준비를 구체화시키는데, 이것은 ‘한국민족의 자쥬독립능력을 과시’하고, 민족국가건설 최우선 노선에 서서 ‘일제패망 후 민족국가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항일건국준비를 해오던 세력은 1944년 8월 10일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한다. 건국동맹은 친일분자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하고 민족적 양심이 있는 인사를 총망하고 있는데, 건국동맹의 건국방향은 1944년 10월에 작성된 건국동맹의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강령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각인각파를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로 일제를 구축하고 한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다고 천명한다. 두 번째로 연합국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일체 독립을 저해하는 반동세력을 박멸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적 건설과 노동대중의 해방을 천명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건국동맹의 강령은 ‘민족국가의 건설’을 우선과제로 제시하고, 노동대중의 해방에 중점을 두면서도 ‘민족주의자를 광범위하게 포섭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여운형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 견지하는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이다. 건국동맹은 조직 확대, 치안대, 식량대책 기구 조직의 구체화, 후방교란, 해외 민족해방운동단체와의 연결등에 치중하여 활동하였다. 중앙조직과 각 도에 걸친 조직은 1945년 해방이후 건국준비위원회의 모체 및 부분적으로 지부가 되었다. 건국동맹은 전시치하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조직면으로도 활동면으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건국준비위원회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