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평전 내용
- 최초 등록일
- 2011.11.11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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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은 1886년 5월 25일 정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곡에서, 아버지 여정현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종손이 없어 모두들 손을 기다리던 참이라 사내아이의 출생은 그 일가뿐 아니라 문중 전체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조부 여규신은 며느리가 임신 중 꿈에 해를 보았다는 말을 듣고 손자의 호를 몽양이라고 지어주었다. 몽양의 아버지 여정현은 임진왜란 후 최초의 수호사로 일본에 다녀온 여우길의 10대손이었고, 어머니는 임진왜란 때 일등공신으로 권모와 지략이 풍부하고 정치적 역량이 탁월했던 백사 이항복의 11대 손녀로서 대범하고 활달했다. 몽양은 어린시절에 조부 여규신과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린 몽양은 네다섯 살이 되면서 활쏘기와 연날리기를 즐겨했다.
몽양이 서양문물을 처음 접한 것은 14세가 되던 해였다. 당시 그의 숙부 여병현이 미국 유학길에서 돌아와 배재학당 영어교사로 있었다. 그의 인도로 배재학당을 찾았고, 비로소 서양문화가 한국보다 훨씬 앞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친의 완고한 반대를 무릅쓰고 1900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선교사 학교인 배재학당은 일요일 예배 참석을 강요했고, 불참한 몽양은 불참사유를 정직하게 고백했지만 정학을 당했다. 이에 격분하여 3년 과정의 배재학당을 중퇴해버리고, 민영환이 세운 흥화학교로 옮겼다. 흥화학교에서의 몽양은 수재로 이름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시련과 고난의 시기가 닥쳐왔다. 17세 되던 1903년에 결혼한 지 4년 만에 첫 아내를 잃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조부가 돌아가셨다. 1905년에는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 다음해인 1906년에는 아버지까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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