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민족해방운동세력의 활동 - 민족유일당운동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1.11.16
- 최종 저작일
- 2011.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소개글
국외 민족해방운동세력의 활동 - 민족유일당운동을 중심으로
목차
1. 민족유일당운동의 배경
2. 중국 관내지역 민족유일당운동
3. 만주지역 민족유일당운동
4. 민족유일당운동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 민족유일당운동의 배경
920년대 중반부터 중국 관내와 만주지역에서 임시정부 수립운동의 범주를 넘어 ‘이당치국(以黨治國))’ 원리에 입각한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족해방운동 지도기관을 ‘정부’로 할 것인가 ‘당’으로 할 것인가의 논쟁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는 시점부터 제기되었다. ‘정부수립론’의 핵심은 ‘한일합방’ 이후 국내외 동포들이 정부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고, 정부를 조직함으로써 국내외의 공개적인 지원을 회득하여 효율적인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조직론’을 주장했던 논자들은 주권ㆍ영토ㆍ인민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당을 조직하는 것이 민족해방운동을 수행하는 데 적절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임시정부를 수립할 당시는 다수의 의견이 형식과 명분을 중시하는 정부수립론으로 기울어져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해갈 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당조직론’이 다시 제기되었고, 결국 926년부터 ‘이당치국’의 원리에 입각한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민족유일당운동이 대두된 첫 번째 배경은 첫째, 일제가 중국의 봉계군벌2)과 체결한 미쓰야협정3)이 민족해방운동세력과 이 지역에 거주하는 교포들에게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일제는 미쓰야협정을 통해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한편, 보민회, 조선인민회 등의 친일단체를 통해 민족운동을 분열시키는 ‘이한제한(以韓制韓)’ 정책을 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민족주의 세력의 일부에서 타협주의가 대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은 운동역량의 분산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좌우익 계열을 통일하여 일제와의 전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민족해방운동의 총지도부 역할을 수행할 민족유일당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