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패전과 재일동포의 귀환
- 최초 등록일
- 2011.11.17
- 최종 저작일
- 2010.06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2차 세계대전 직후 일제의 패망과 재일교포의 오늘과 현재에 대한 대학교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패전 후 일본의 한국인 인식
Ⅲ.재일 동포의 본국 귀환
Ⅳ.해방 되지 않은 재일 동포
Ⅴ.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2차 세계 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945년 8월6일 연합군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뜨리고 난후 3일후인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 후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던 일본 천황은 육성 방송을 통해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을 국내외에 알렸다. 이 와 함께 한국과 대만에 대한 식민지 지배도 끝났다. 해방당시 일본에는 조선 총인구의 0퍼센트(약240만)가 생활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상황은 거의 같았고, 일본의 패전은 일본인이 되는 것을 강요받아온 재일 조선인들에게 중대한 문제로 다가왔다. 90년 한국 병합 당시 겨우 수 천명이나 백 수십명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하는 일본 재일조선인이 36년간의 통치기간에 240만명까지 늘어 났던 것은 분명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위한 인적자원 확보 때문이였다. 해방을 맞이한 재일 조선인은 누구라도 빨리 조선으로 귀국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당시 패전이후 일본정세의 혼란은 조선인의 귀국을 둔화시켜 946년 3월에는 약 87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잔류하게 된다. 그 사이 미군은 구 식민지 출신자인 조선인과 대만인을 해방 인민으로서 처우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일본 국민이며 필요한 경우에는 ‘일본정부의 자유재량에 맡긴다’ 라고 지령을 내렸다.) 그 결과 재일 조선인은 미군과 일본인의 이중적 지배구조를 받으면서도 계속 일본정부의 뜻을 따르는 이름뿐인 해방 상태였다. 그럼 해방 이후 재일 교포 귀환 문제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Ⅱ. 패전후 일본의 한국인 인식
일본인들은 연합국에 대한 패전 의식이 컷던 만큼 일본인 스스로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조선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일본 천황의 패전 직후 육성방송을 통해서 잘 알수 있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태에 비추어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하고자 하여 이에 충성스러운 신민들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에 대해 그 공동 선언(포츠담선언)을 수락하도록 통고하였노라. ```
참고 자료
윤건차,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 창비, 54~55p
윤건차,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 창비, 55p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98p
강재언, 김동훈, 『재일한국 조선인-역사와 전망』, 소화 2005, 03P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200p
한일민족문제학회, 『재일 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 삼인, 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