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요인과 정치적 의미
- 최초 등록일
- 2011.12.06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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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 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게 된 요인과 그 정치적 의미를 서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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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일성 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게 된 요인과 그 정치적 의미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소련군은 북한에 주둔하여 북한을 소련을 모방한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소련은 지역공산주의자들이 지지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고 권위 있는 민족주의자들과 상호이해의 확대를 도모하는 등지지 세력을 만들어야했다. 그러나 소련은 민족주의자들과 제휴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북한정책 실현과정에서 의지할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했다. 이 때 공산주의자들이 귀국하게 되는데 만주파인 김일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과거에 빨치산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만주 빨치산파 부대장이었으며 당시 평양 위수사령관 보좌역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젊은 소련군 대위 김일성의 출현은 매우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 소련은 김일성을 대북한정책 실현과정에서 의지할 새로운 인물 후보자로 선택하고 미래의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려 결정한다. 이 결과로 김일성은 해방 후의 한국에서 정치 기반이 전혀 없었으나 소련 군정의 도움을 받아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이 되어 공산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초기의 북한지도부는 4개의 파벌 즉,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만주(빨치산)파로 이루어져 있었다. 국내파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국내에서 지하 조직 활동을 계속해 온 한국공산주의자들이 속해 있었고, 연안파에는 중국으로 망명한 한국인 공산주의자 및 지식인들이 속해 있었다. 소련파에는 소련군 사령부가 북한에서의 정책추진에 활용하기 위하여 북한에 파견한 다수의 소련국적 한인들이 속해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일성을 지도자로 하는 만주파 혹은 빨치산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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