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어업수탈과 해녀항일운동
- 최초 등록일
- 2015.04.07
- 최종 저작일
-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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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의 어업수탈
1.남해안 해조류가 왜 중요한가
2.어업령의 공표와 어업조합의 불만
Ⅲ. 해녀의 항일운동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1945년 해방을 하기까지 약 36년 동안 일제의 지배를 받으며 수탈을 당해왔다. 제주도 또한 여러 자원의 수탈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제주도에서도 여러 항일운동들이 일어났다.
이번 발표문에서는 그중에서 일제의 어업수탈과 3대 항일운동 중의 하나인 해녀항일운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일제의 어업수탈
1. 남해안 해조류가 왜 중요한가
일제는 개항이후 조선산 해조류를 구입하기 위해 조선어장으로 진출하였다. 조선산 해조류는 일본의 최상급 해조류 품질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일본에서는 해조류가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일본어장과 비슷한 환경의 조선어장은 일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였다.
남해안에서 해조류의 최대 산지는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섬 주위로 암석이 노출되어있어 해초류들이 풍부하였다.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감태가 필요하게 되고 일제는 조선전역을 시찰하여 감태생산지를 확보하였고 1905년 4월 제주도 성산포에 ‘조선물산주식회사’ 를 설립하였다. 이후 일본에서 해녀들이 넘어와 채취하고 공장에서 가공하여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방파제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일본인 택지용지가 조성되면서 어업 관련 일본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해조류 중에서도 가사리와 우뭇가사리는 조선에서도 외화를 벌기위한 수단이기도 하였으며 일제가 주력으로 수탈하던 자원들이였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보면 가사리는 비단을 짜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자원이라고 적혀있다.
표 1 일본으로 수출되는 조선산 가사리
빛깔은 붉다. 햇볕에 오래 말려두면 노랗게 변하며 매우 끈끈하며 미끄럽다. 이것을 이용하여 풀을 쓰면 밀가루와 다름이 없다. 번식하는 지대는 수층이다. 일본인은 종가사리와 이것을 사기 위해서 상선을 보낸다. 혹은 배와 비단을 바르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참고 자료
김수희, 「 일제시대 남해안어장에서 제주해녀의 어장이용과 그 갈등 양상」 , 부경역사연구소, 2007.
김영돈, 「제주 해녀의 실상과 의지」, 비교민속학회, 2008.
박찬식, 「제주 해녀의 역사적 고찰」, 한국역사민속학회, 2004.
진관훈, 「일제하 濟州島 경제와 海女勞動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제주도, 『제주항일운동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