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생활문화 미얀마문화조사
- 최초 등록일
- 2017.11.28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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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일본 식민지 시대(1886년~1948년)
콘바웅(Konbaung)왕조의 세력 확장은 결과적으로 당시 인도 내 영국 세력과 충돌을 가져왔다. 제1차 전쟁(1824년~1826년), 제2차 전쟁(1852년), 제3차 전쟁(1885년)을 겪은 뒤 콘바웅왕조는 결국 패망하였고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 1937년 4월 영국 의회가 개정 버마통치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버마는 인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식민지와 자치령의 중간적 법적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버마에 남기관(南機關)을 설치하여 ‘아웅 산(Aung San)’ 장군을 중심으로 한 ‘30인의 동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버마 독립의용군을 조직하여 1942년 3월 양곤(Yangon)을 점령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일본은 버마를 지배하였다. 버마 독립을 위해 영국군 및 일본군과 무장 투쟁을 벌여 국민적 영웅이 된 아웅 산 장군은 1947년 7월 각료회의 도중 암살되었다. 이후 우누(U Nu)가 버마 임시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1947년 12월 영국 의회는 ‘버마 독립 법안’을 가결하였고, 독립 기반이 형성되었다.
2. 버마 독립과 우누의 사회주의(1948년~1962년)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는 영국 연방에서도 탈퇴하였다. 우누(U Nu)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연맹(AFPFL, Anti-Fascist Peoples' Freedom League)이 집권해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대외적으로는 엄정 중립주의를 표방하였다. 우누 총리는 1962년 3월 네윈(Ne Win) 총사령관의 쿠데타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10여 년간 재임하면서 신생 국가의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공산당과 소수민족의 반란에 따른 내전 등으로 집권 기간 중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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