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관청
- 최초 등록일
- 2023.12.16
- 최종 저작일
-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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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비원과 혜민국
2. 통문관
3. 사천대
4. 태의감
5. 소격서
본문내용
고려와 조선시대의 관청은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고려시대의 관청은 시기에 따라서 이름이 바뀌면서 조선시대까지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비원과 혜민국
고려시대에는 빈민구제기관으로 대비원이 있었고요 질병치료 기관으로 혜민국이 있었습니다
대비원
빈민구제기관
혜민국
질병치료 기관
고려시대의 빈민구제기관인 대비원과 질병치료 기관인 혜민국과 관련하여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1112년(예종 7)에 설치하였고, 충선왕(忠宣王, 재위 1298, 1308∼1313) 대에는 사의서(司醫署)에 속하게 하였다가, 1391년(공양왕 3) 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으로 이름을 바꾸어 일반 진료에 종사하게 하였다. 판관 4명을 두었다.
조선 시대 들어 태조(太祖, 재위 1392∼1398) 대에 혜민고국(惠民庫局)으로 재설치되었고, 이후 혜민국으로 불렸다. 세조(世祖, 재위 1417∼1468) 대에 혜민서(惠民署)로 명칭을 바꾸어 이후 조선 시대 내내 백성들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서 대비원(東西大悲院)【문종(文宗)이 정하여 사(使) 각 1인, 부사(副使) 각 1인, 녹사(錄事) 각 1인으로 하되 병과권무(丙科權務)로 하였다. 이속(吏屬)은 기사(記事) 2인인데, 의리(醫吏)로 충당하고 서자(書者) 2인으로 하였다. 충숙왕(忠肅王) 12년에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혜민국(惠民局)ㆍ제위보(濟危寶)ㆍ동서 대비원은 본래 사람을 구제하기 위함인데, 지금 모두 폐하였으니 마땅히 다시 고치고 세워서 질병을 고치게 하라.”고 하였다.】
○ 혜민국(惠民局)【예종(睿宗) 7년 판관(判官) 4인을 두고 본업(本業=의업)과 산직(散職)을 서로 교체하여 임명하며 을과권무(乙科權務) 관직으로 할 것을 정하였다.
충선왕(忠宣王) 때 혜민국을 사의서(司醫署)의 관할 아래 두었다가 공양왕(恭讓王) 3년 혜민 전약국(惠民典藥局)으로 고쳤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