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발칸 분쟁사
- 최초 등록일
- 2006.07.27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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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칸 분쟁사에 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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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발칸 분쟁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풀어야 할 첫 매듭이 알바니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15세기에 발칸 반도에 트리키언과 일리리언이 살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일리리언이 현재 알바니아인들의 직계 조상이다. 발칸 반도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트라키언이었다. 나중에 들어온 일리리언은 발칸 반도에 정착한 트라키언을 제압했다. 아마도 트라키언이 사라진 이유는 일리리언이 행한 최초의 인종 청소 탓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발칸 역사가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은 로마의 분열과 슬라브인의 발칸 정주라는 두 가지 사건과 맞닿아 있다. 동, 서로마의 분리로 인해 동, 서로마를 나누는 경계선은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서유럽 문화와 동방 문화의 경계선이자 종교적으로 그리스 정교와 가톨릭의 경계선이다. 20세기 발칸 분쟁의 전선은 로마 시대 경계선을 따라 형성되었다. 경계선은 주위에 슬라브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점차 서로를 구분 짓는 기준으로 굳어졌다. 이들이 오늘날의 발칸 반도의 주인공이고 ‘유고슬라비아’는 발칸 남쪽에 사는 슬라브인들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등으로 구분되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 발칸의 동쪽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리스정교 문화를 받아들였으나 이들이 바로 세르비아인이다. 서북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가톨릭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였으나 서유럽 문명의 세례를 진하게 받았으니 이들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인이다.
보스니아 전쟁 학살 책임자이자 발칸 전쟁을 주도한 쪽은 세르비아인들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의 역사에는 1169년 스테판 두산이라는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 왕이 있다. 스테판 두산의 유적은 알바니아인 집단 거주지인 코소보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 거주 알바니아인을 박해하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뿌리가 되는 것은 스테판 두산이라는 신화다. 이러한 것은 세르비아인들이 추구하는 ‘대세르비아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대세르비아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인 ‘유고슬라비즘’의 등장은 발칸의 앞날을 어둡게 했다. 대세르비아주의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하 대통일을 의미한다면 유고슬라비즘은 그와는 반대로 ‘남쪽 슬라브인들의 동등한 대통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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