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6.11.2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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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덕궁 답사기 입니다.
직접찍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감상평은 뺐습니다.
목차
1.창덕궁 소개
2.창덕궁의 역사
3.배치와 특징
4.창덕궁내 건물
본문내용
1.창덕궁 소개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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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태종(太宗)의 신궁(新宮) 영건(營建)
태조4년(1395) 9월에 새 궁궐 경복궁이 완성된 후, 얼마되지 않아 태조 7년 8월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 세자 방석이 죽자 태조는 왕위를 정종(定宗)에게 양위한다. 그러나 정종은 개성으로 돌아가고 다음 해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방원에게 양위하니 그가 바로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즉위하여 한양(서울)으로 재 천도하게 되는데 이 무렵 이궁(離宮 ; 태자궁, 세자궁의 총칭)으로 지은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 조성공사는 태종 4년(1404) 10월에 시작, 다음 해 10월에 일단 끝난 단기간의 공사이므로 태종은 재위 중 계속하여 궁안의 문이나 누각들을 세웠으니 돈화문(敦化門)이 완성되는 태종 12년에 가서야 거의 궁궐 면모가 갖추어지게 된다.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仁政殿) 일곽(一廓)인 외전과 대조전(大造殿) 일곽인 내전으로 나누어 진다. 정문인 돈화문에는 큰 종을 달아 새벽과 밤늦게 쳐서 시간을 알리고 치안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 했는데, 특히 이 종은 전국 각도의 무쇠 1만5천근을 모아 만들었으며 변계량(卞季良)에게 명하여 종명을 지어 새기게 하였다.
②창건후 임진난(任辰亂)까지
창건후 임진난이 일어날 때가지 약180여년간 큰 재난 없이 존속되었다. 연산군 대에 이르러 무리한 공사를 벌였으나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이 왕명에 반대하는 신하는 모두 처형하는 폭정을 하였는데 이 때 많은 전각들이 개조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될 때 이 궁도 화재를 당했다. 이 때의 사실을 선조 수정실록 25년 4월초는 이렇게 기록한다.
"제일 먼저 장예원과 형조가 탔으며 이 이국은 공사노비문적이 있는 곳이다. 삼궁이 모두 탔으며 임해군가가 타고 병조판서 홍여순가가 많은 축재를 하였다하여 난민들이 불태웠다."
이 기록으로 보아 왜군들이 한양에 입성하기 직전 왕이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자 곧 난민들에 의하여 소실되었고 화재를 당한 후 15년이 경과하여 선조40년경부터 광해군 원년 사이에 제1차 공사로써 주요 전각을 비롯하여 대개 복구가 되었고 다시 광해군 5년에 제2차 공사로서 완전한 재건 복구가 되었던 것이다. 창건 후 제2의 건설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