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재건운동
- 최초 등록일
- 2006.12.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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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9년~1945년의 17년간에 걸쳐 전개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의 전개과정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 당재건뿐만 아니라 민족해방운동의 유기적 일부임과 이재유 그룹의 대한 자세한 활동 사항을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서론
본론
Ⅰ 조선공산당의 창당과 해산, 그 이후 재건 활동
Ⅱ 지역 공산주의자 그룹과 혁명적 대중조직 운동
《이재유 그룹》
1. 이재유, 운동의 시작
2. 이재유 그룹의 형성과 그 활동
(1). 경성트로이카시기(1기)
①노동운동
②학생운동
③출판물 간행 활동
(2). 경성재건그룹시기(2기)
①경성재건그룹의 형성
② 출판활동
③평가
(3). 경성준비그룹시기(3기)
3. 그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한계
Ⅲ 일제 전시 파쇼 체제하에서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1937년-1945년)
Ⅳ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의 한계와 의의
결론 -마치며
본문내용
조선공산당 창립 이전에 여러 공산주의 그룹들은(화요파․서울파등) 당 창당을 최우선적 조직 과제로 설정했다. 그 결과 화요파․북풍회파․상해파 공산주의자 그룹들은 공산당 결서에 합의하여 1925년 4월 17일 서울에서 비밀리에 조선공산당 제1차 당 대회를 개최하고 조선공산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조선공산당과 당외 서울파 공산주의 간의 분쟁, 조선공산당 내에서 북성회파와 화요파간의 분쟁, 당의 연합반대파와 조선공산당간의 분쟁 등이 나타났다.
코민테른이 조선공산당을 승인한 것을 계기로 이러한 분파주의적 성향을 청산하고자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그것으로서는 불충분한 것이었고 오히려 이러한 통일운동 과정에서 엠엘파와 서울상해파가 형성되어 각 그룹간의 대립이 심화되어갔다. 이렇듯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조선공산당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3차 당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사실상 그 세력들 간에 결합의 여지를 거의 상실하였다고 본다.
1928년 말 코민테른은 6차 대회를 통해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의 임무에 관한 테제’(12월테제)를 발표하는데 이는 사실상 조선공산당의 해체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12월테제에서는 그때의 식민지 조선이 일제를 위한 원료 생산 및 쌀 공급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일제는 민족개량주의자들을 회유․매수하여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진출을 저지시키고 민족적 대립을 조장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때 조선이 분파투쟁의 폐단에 빠져 있고 당원들이 소부르주아적 지식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유로 조선공산당의 지부 승인을 취소하였고, 새로운 공산당을 결성하라고 결정했다. 즉,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정치적 지침서로서 12월테제를 발표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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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트로이카』안재성 사회평론 2004
한국 역사 입문,「3.사회주의 운동」, 근대 현대편 / 한국역사연구회 엮음 서울 풀빛 1996
「6.민족통일전선운동」,한국 역사 입문, 3, 근대 현대편 / 한국역사연구회 엮음 서울 풀빛 1996
신주백, 「1930년대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해방운동론」『역사비평』 통권 8호 1990년 봄
「1930년대 반일민족통일전선의 운동과정」『역사와 현실』통권 2호 1989 12월
안태정 「자주적 공산주의자 이재유의 혁명노선과 ‘좌익전선’운동」『역사비평』통권 14호 1991년 가을
이준식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3)/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진보평론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