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군벌시대와 국공합작
- 최초 등록일
- 2011.12.14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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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책 요약 입니다. 신해혁명이후부터 2차국공합작까지 요약하였습니다. 근대 중국사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중앙과 지방의 군벌
반군벌운동
제1차 국공합작
5․30운동
국민정부의 수립과 북벌의 완성
남경 국민정부시대
제2차 국․공 합작과 항일전쟁
본문내용
중앙과 지방의 군벌 - 1916년 원세개의 사망으로 북경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북양군벌은 일본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단기서(段祺瑞)의 안휘파와 영국과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풍국장(馮國璋)의 직예파였다. 그러나 양파는 어느 편도 정국을 주도할 힘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서로 타협하여 부총통인 여원홍을 대총통으로 풍국장을 부총통으로 단기서를 국무총리로 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문제로 인해 북경정부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결국 단기서는 안휘파의 정객들로 구성된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였다. 이에 대해 직예파는 1920년 봉천파의 장작림과 연합하여 안휘파와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직예파와 봉천파 사이에도 갈등이 빚어져서 이번에는 봉천파가 안휘파, 손문과 반직예파의 삼각동맹을 맺고 1922년 4월 제1차 직봉전쟁을 벌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직예파는 한때 북경정부의 개혁 가능성에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지만, 이 내각의 무기력함이 드러나면서 기대가 무산되었다. 직예파와 반직예파 삼각연맹의 맹주인 봉천파 사이에 1924년 9월 다시 제2차 직봉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봉천파의 승리로 돌아가고 단기서가 임시집정에 취임하였다.
한편 북양군벌이 북경정부를 둘러싼 패권다툼에 골몰하고 있는 동안 지방 각지에는 크고 작은 군벌들이 반독립적인 상태로 할거하였다. 만주에는 일본세력을 등에 업은 장작림, 산서에는 염석산, 운남에는 당계효, 광동에는 진형명 등이 할거하고 있었다. 이들 지역군벌도 중앙군벌이나 마찬가지로 잦은 전쟁을 통해 성쇠부침이 심했다. 또 지역군벌이 어떤 성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서 그의 지배가 전 성에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성 안에는 다시 소규모 지역군벌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전반적으로 군벌시대에는 대부분의 지역이 잦은 군벌세력의 교체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진 안정된 통치구조를 갖지 못했다.
이와 같은 군벌시대의 통치는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인 행정능력을 갖지 못하고 지방군벌에 의한 분권적인 경향이 강했으므로 군비는 군벌이 직접 농민, 상인층으로부터 현지에서 재정을 조달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농민들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군벌들은 이외에도 아편의 독점적 경영, 저질 화폐의 주조, 공채발행 등을 통해 경비를 조달하였다. 군벌들은 갖가지 수탈과 지배지역 내의 지주, 신사와의 유착관계를 통해 스스로 대지주로 성장하였지만 그 지배하의 민중과 중국 전체의 경제발전에는 큰 피해를 미쳤다. 또한 각각의 군벌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므로 매국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였다. 군벌시대를 민국 이래 최대의 암흑기로 표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