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현대사] 난징대학살
- 최초 등록일
- 2004.06.23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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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 역사적 배경
2. 점령 직전의 남경
3. 참혹한 테러의 현장
4. 어째서 중일전쟁이라는 파국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5. 종전과 전범재판
6. 어째서 일본은 책임을 지지 않는가
7. 현재의 중일관계
미주
본문내용
난징은 수세기에 걸쳐서 1645년에는 만주족이, 1853년에는 태평천국 반란군이, 1864년에는 청의 지방군이, 1912년에는 공화국 군대가 일으킨 무장공격과 그것에 병행된 선전전을 나름대로 견뎌왔다. 1937년 당시 장제스는 난징이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보증했지만, 그가 방어를 맡긴 사람은 국민당 정치인이자 옛 군벌인 탕성즈라는, 그에게 어떤 특별한 충성도 보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탕성즈가 남달랐던 것은 불교 신앙의 정신적인 고문에게 충실한 믿음을 보였다는 점인데, 그 불교 고문은 과거에 그의 군대에게 충성심을 주입시켜 왔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판단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 불교도는 이제 탕성즈에게 도시의 방어를 지후하는 임무를 받아들이라고 충고했고, 탕성즈는 상하이로부터의 피난이 한창 진행되고 난 뒤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이 잔류시민에게는 모두 관대하게 대하겠다는 전단을 시내에 살포하자, 이 약속을 믿지 않은 중국군 -상하이 전투의 패잔병들- 은 민간인 복장으로 안전하히 도망가기 위해서 난징 시민을 죽이거나 강탈했다. 12월 12일에는 탕성즈 자신이 도시를 버렸다. 그는 난징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방어하겠다고 공언했던지라 그곳의 주둔군을 질서 있게 대피시킬 계획이 아예 없었고, 결국 그의 도망은 군사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 뒤 난징에서는 근대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공포와 파괴의 시간이 이어졌다.
참고 자료
난징대학살 - 아이리스 장 지음
현대 중국을 찾아서2 - 조너선 스펜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