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합작운동과 남조선과도정부, 한국현대사, 미군정, 좌우합작운동, 남조선과도정부
- 최초 등록일
- 2014.07.02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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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사 좌우합작운동과 남조선과도정부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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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Ⅱ. 본론
1. 좌우합작운동
1) 미소공동위원회 이전의 좌우합작 노력
2) 좌우합작위원회
2. 남조선과도정부
Ⅲ.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좌우합작운동은 1946년에 일제 강점기 이후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조선의 좌우 세력이 합작하여 연대를 추진하였던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중도파 세력 인사들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전개되었다.
Ⅱ. 본론
1. 좌우합작운동
해방 이후 중도파 정치세력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46년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된 이후이다. 이들의 정치활동은 1946년말 미군정이 추진한 좌우합작위원회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좌우합작위원회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성립을 둘러싸고 표류하기 시작하자, 8·15 직후부터 정치적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지식인·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중도파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중도파들의 움직임은 여운형의 암살,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등으로 인해 조성된 새로운 정치상황 속에서 민족자주연맹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었다.
⑴ 미소공동위원회 이전의 좌우합작 노력
좌우합작을 통해 민족의 독립을 성취하겠다는 움직임은 식민지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은 때로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보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게 표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좌우의 대립을 극복하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민족적 요구였다. 신간회운동, 민족유일당운동, 1940년을 전후한 임시정부의 확대 개편 등은 이러한 민족적 요구를 수용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8·15이후 좌우익간의 대립은 소련과 미국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지자 정치세력들은 외세와의 결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새로이 건설되는 국가에 관철하고자 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새로운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우익과 좌익이 모두 참여한 조직이었지만,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더 이상 조직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8·15 직후정당간의 통합을 위한 노력은 건준이 해체되고 인공이 수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중도좌파를 대표하던 여운형 계열의 입장에서는 인공 역시 정치세력을 통합하는 작업의 일환이었지만, 조공이 인공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인공에 대한 우익세력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인공의 조직은 좌우익 정치세력의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52』, 탐구당, 2003
강만길, 『고쳐 쓴 한국 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6
고려대학교 한국사 연구실, 『한국사의 재조명』,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1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정치행정 분야, 용오름